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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탁은 있었지만 찬탁은 없었다

찬반탁운동은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운동(찬탁)과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운동(반탁)을 합친 말이다. 1945년 12월 27일에 결정된 모스크바 3상회의의 내용이 『동아일보』에 의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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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문단

반탁운동세력은 미소공동위원회에의 참여를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미소공동위원회에 참여하는 대표들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 시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1947년 6월 23일에 있었던 반탁시위는 소련군 대표에게 돌을 던지는 등 과격한 시위로 발전했고,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에 일조했다.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은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이관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것은 곧 유엔 소총회의 결의에 따라 남한에서의 단독선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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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반탁 운동이 애국적이고 찬탁 운동은 소련의 사주를 받은 공산당의 매국 행위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승만 정부의 승자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이승만 주도의 반탁 운동이 결과적으로 남북 분단 상황을 만든 매국 행위였던 것이다.
(찬탁 운동이 결과적으로 남북 분단 상황을 만든 매국 행위였던 것이다. - 의미가 불분명한 부분도 있고, 반탁을 찬탁으로 쓰는 오타도 있고 해서 위 문장으로 수정)

 

김구 샘이 반탁운동을 주도했는데 왜 매국 행위냐는 반응이 있어서 좀 더 풀어서 적습니다.

1. 이승만 정부의 승자의 기록
여기에는 김구 샘의 입장도 배제되어 있는 전적으로 이승만 입장에서 유리한 기록이라는 의미입니다. 김구 샘이 반탁 운동을 주도했지만, 실제 대표자는 이승만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미군정에서 이승만을 밀어 준 걸로 볼 수도 있고, 김구 샘을 싫어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2. 반탁은 있었지만, 찬탁은 없었다.
3상협정을 지지하는 세력조차도 신탁통치에 대해서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충 뜨뜨미지근한 정도의 반대라고 할 수 있겠죠. 여튼 대다수가 반탁하는 상황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3상협정 지지를 찬탁이라고 액자 씌우기를 하고 반탁의 반대세력으로 만든데다가 그로 인해 남북 분단이 되었다고 하는 게 바로 이승만 정부의 승자의 기록이라는 겁니다.

3. 남북 단일 정부를 지지하느냐 아니냐가 핵심
3상협정을 지지하는 세력과 김구 샘이 일치하는 부분이 그거죠. 남북단일 정부.
그런데 이승만은 반탁 운동을 시작으로 남북 분단을 초래하게 되죠. 일부러 그랬는지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매국 행위를 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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