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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이라 쓰고 '다님'이라 읽는 이유 (옳은 발음은 '다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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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마침표.

놀라운 우리말찰나의 우리말  어릴 때부터 늘 궁금했던 단어 발음이 있다. 이 단어의 발음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국립국어원이 운영하고 있는 국어 관련 상담(온라인 가나다 또는 가나다 전화) 내용을 검토해 보면 이 단어의 발음을 묻는 사람들의 질문이 보인다. 또, 포털 사이트의 질의응답을 나누는 곳에 들어가도 이 단어의 발음을 궁금하게 여기며 질문을 던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 단어는 바로 ‘학급이나 학년 따위를 책임지고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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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늘 궁금했던 단어 발음이 있다. 이 단어의 발음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국립국어원이 운영하고 있는 국어 관련 상담(온라인 가나다 또는 가나다 전화) 내용을 검토해 보면 이 단어의 발음을 묻는 사람들의 질문이 보인다. 또, 포털 사이트의 질의응답을 나누는 곳에 들어가도 이 단어의 발음을 궁금하게 여기며 질문을 던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 단어는 바로 ‘학급이나 학년 따위를 책임지고 맡아봄.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하는 ‘담임(擔任)’이다. 이 단어의 철자가 ‘담임’이니 발음은 응당 [다밈]이 되어야 한다. ‘겸임’이 [겨밈]이 되고, ‘적임’이 [저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고 있는가를 잘 들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단어를 많은 사람들이 [다밈]이 아니라 [다님]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양한 연령층의 표준어 화자 350명을 대상으로 2003년 국립국어원(당시 국립국어연구원)이 실시한 표준 발음 실태 조사 결과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확인된다. 조사 대상이었던 표준어 화자 350명 중에서 ‘담임’을 표준 발음에 맞게 [다밈]이라고 발음한 사람은 56명, 즉 16%에 불과했다. 오히려 표준어 화자 350명 중 294명, 즉 84%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이 단어의 발음을 표준 발음과는 달리 [다님]이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국어원의 전신이었던 국어연구소가 1988년 간행한  ≪국어생활≫ 4권 12호에도 이 단어의 발음에 대한 질의응답이 실려 있다. (1)은  ≪국어생활≫ 1988년 봄 제12호 140쪽에 실린 질의응답 내용을 그대로 보인 것이다.

 (1) ≪국어생활≫ 1988. 봄 제12호 140쪽 질의응답 중에서

 (1)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시민이 이 단어의 발음이 [다님]인지 [다밈]인지를 국어연구소에 질문한다. 이에 대해 국어연구소는 ‘겸임(兼任)’을 [겨밈]이라고 발음하는 것과 같이 ‘담임’도 [다밈]으로 발음하는 것이 맞다고 답한다. 단, ‘담임’을 [다밈]이 아니라 [다님]이라고 발음하는 것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ㄴ/ 첨가, 조음 위치 동화, 그리고 /ㄴ/ 탈락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담임’은 /ㄴ/ 첨가가 일어나서 [담님]이 되는데, 첫음절의 종성 [ㅁ]가 뒤에 오는 초성 [ㄴ]에 동화되어 [단님]이 되고, 또 첫음절의 종성 [ㄴ]가 탈락되어 최종적으로 [다님]이라는 발음이 나오게 된다는 설명이다. 요약하면, ‘담임’이 [다님]으로 발음되는 것은 [담님] → [단님] → [다님]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설득력이 매우 부족하다. 표준어 화자들은 대체로 2음절 한자어에서 /ㄴ/ 첨가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은 둘째 치더라도, 이렇게 첨가된 /ㄴ/가 앞에 있는 /ㅁ/의 조음 위치를 바꾸어 ‘ㅁㄴ’가 ‘ㄴㄴ’가 된다는 설명은 매우 부적절하다. 양순음인 /ㅁ/는 치경음인 /ㄴ/보다 조음 위치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경음은 양순음에 의해 동화되지만 양순음은 치경음에 의해 동화되지 않는다. ‘신문’은 [심문]으로 발음되지만, ‘심난’은 [신난]으로 발음되지 않는 이유다. 또, 조음 위치 동화를 받아 /ㄴ/로 실현된 첫음절 종성의 /ㄴ/가 왜 탈락하게 되는지도 설명할 수 없다. 결국, 1988년에 제공된 국어연구소의 답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또 다른 설명은 이화 현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담임’의 원래 발음은 [다밈]이지만, 둘째 음절 [밈]의 초성과 종성이 모두 양순음이라서 이화 현상으로 두 번째 음절의 초성이 치경음 으로 변화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왜 ‘겸임’이나 ‘꾸밈’의 경우에는 [겨밈], [꾸밈] 처럼 [밈]의 발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다밈]의 경우만 유독 [밈]이라는 음절의 발음이 문제가 되는가를 설명하기 어렵다.
 두 가지 설명이 모두 설득력이 없다면 ‘담임’의 발음을 많은 사람들이 [다님]으로 하는지를 달리 설명할 수는 없을까?

 이 단어의 발음에 다시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한 대학원생의 질문 덕분이었다. 대학원생들과 한 달에 한 번씩 공부한 내용을 가지고 소규모로 질의응답 및 토론을 하는데 그 자리에서 ‘담임’의 발음을 왜 많은 사람들이 [다님]이라고 하는가를 물은 것이다. 잊고 있던 궁금증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어의 발음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의 발음을 확인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담임’에 해당하는 단어의 발음은 [tannin]이었다.

 그리고 신문 자료 보관소(아카이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오래전 신문에 ‘담임’을 의미하는 단어의 한글 표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https://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Keyword.nhn)를 검색한 결과, 이 단어의 한글 표기는 ‘담임’ 이외에도 ‘단님’, ‘담님’, ‘단임’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림 1]에 보인 기사의 경우처럼 한 기사 안에서 서로 다른 표기법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 기사는 1948년 7월 4일 자 경향신문 사회면에 실린 독자 제언으로, ‘담임’에 해당하는 단어가 세 번 사용되었다. 그런데 세 번 모두 표기법이 달랐다.
 제목에는 ‘육학년담님선생’과 같이 ‘담님’으로, 본문에는 ‘륙학년단임선생님’, ‘육학년단님을할려고’와 같이 각각 ‘단임’과 ‘단님’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가운데 ‘담님’은 다른 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표기이지만, ‘단임’과 ‘단님’은 다른 기사에서도 관찰이 가능한 표기다.

▲[그림 1] 경향신문 1948년 7월 4일 사회면

 ‘담임’의 표기 중에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인 표기는 ‘단임’이었다. 이 표기는 신문 자료 보관소(아카이브)에서 1920년대부터 관찰되기 시작하여 1977년까지 이어진다. 한편 ‘단님’ 표기는 30년대와 40년대에 소수 용례를 보이다가 없어진다.
 ‘단임’과 ‘단님’의 표기는 이 단어의 실제 발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이 단어의 실제 발음은 일본어 발음인 [tannin]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사용이 빈번해진 단어이고, 교육 기관에서 쓰이며 확산된 단어이며, 입말에서 높은 빈도로 사용된 단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담임’의 발음이 [다밈]이 아니라 [다님]인 것은 ‘담임(擔任)’이 입말 에서는 한자어가 아니라 일본어에서 온 외래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즉, 철자로는 한자어라는 인식에 기반하여 한자음에 맞게 ‘담임’이라고 표기하지만, 실제 입말에서는 일본에서 온 외래어에 기반한 [다님]이라는 발음으로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담임’은 철자법에 맞는 발음인 [다밈]보다는 입말로 유통되어 굳어진 [다님]이 훨씬 널리 발음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한국어의 일반적인 음운 현상을 고려할 때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법을 동원하여 불합리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처럼 놀랍게도 언어는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아무 이유 없이 엉뚱한 발음을 갖거나 엉뚱한 의미를 갖거나 엉뚱한 용법을 갖는 것이 아니다.

 언어에 그런 과거가 담긴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그 뒤에 숨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언어에 기억되어 있는 과거를 확인하는 일이, 동시에 앞으로 우리 언어에 기억되었으면 하는 현재와 미래를 담는 일이기도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 신지영(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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