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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khan.co.kr/201604011707531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규정한 제주 4·3 사건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청소년용으로 제작·보급한 만화책 <6·25 전쟁>에서 제주 4·3 사건을 “제주 남로당의 무장 반란”이라고 편파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미 정부 차원의 조사가 끝나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민에게 사과까지 한 사건의 의미를 부정하고 뉴라이트적 시각을 강화한 셈인데요.

박물관은 지난해 1월 한국 근현대사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만화책 3권 <6·25 전쟁>, <대한민국의 태동>,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획한 후 1년여 동안 제작해 지난해 11월 중·고등학교 도서관, 국공립도서관 등에 배포했습니다. 3000부씩 총 9000부를 제작·배포하는 데 1억4900만원을 썼다고 하네요.

박물관은 이 만화에서 “1945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이 주도한 무장 반란이 일어났다. 극심한 혼란이 계속되자 정부는 대대적인 진압 작전을 전개했다”며 남로당 ‘무장 반란’으로 정부 작전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서술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1945년, 이상하죠? 1948년 일어난 사건을 1945년(21쪽)이라고 잘못 기술한 것인데요. 기본 오류 중 기본 오류입니다. 이밖에도 편파적인 서술과 사실 오류 등이 발견됐습니다. 우선 만화 내용(19~23쪽)을 직접 보시고 판단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제주도민들의 저항 생략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했고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4월 3일을 국가 공식 기념일인 국가추념일로 지정하기도 했죠.

문제는 이 만화가 경찰의 과잉 진압에 제주도민들이 저항한 사실은 생략하고 제주도민의 반발이 남로당의 획책 때문이었다는 식으로 단순화한 점입니다. 만화는 “사태가 악화되자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산주의자 소탕작전에 박차를 가한다. 1949년 5월이 돼서야 무장 반란세력이 대부분 소멸된다”고 서술하고 있는데요. 제주도민들의 역할을 소거하면서 남로당의 획책으로 ‘반란’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규정하고 정부 진압을 정당화하는 것이죠. 당시 친일 경찰들의 횡포나 토벌대의 과도한 진압은 축소하고 사태를 ‘폭동’이라 몬 뒤 ‘잘 진압했다’는 식으로 정리하면서 정부의 잘못은 사라지고 그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이 있었다는 식으로 단순화한 것입니다.

제주 4·3연구소 김은희 상임이사는 “당시 제주도는 3개 선거구 중 2개에서 5·10 선거가 무효가 될 정도로 선거 참여율이 낮았다”며 “남로당이 주민들을 선동한 게 아니라 도민들이 단독 정부를 반대했기 때문에 남로당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간인이 희생됐는데 ‘소탕’이라니…

21쪽에는 “1949년 5월이 돼서야 무장 반란세력이 대부분 소멸된다”는 서술과 함께 군인이 “소탕 끝”이라며 만세를 부르며 웃고 있습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조한경 전 회장은 “제주 남로당의 무장 봉기가 시작인 것은 맞지만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한 국가 폭력 때문에 현재는 ‘폭동’이 아닌 ‘사건’으로 용어가 정리된 상황”이라며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 사망했고 그 대부분이 민간인임을 감안한다면 ‘소탕’이란 단어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조 전 회장은 “만화 내용이 전두환-노태우(4-5차) 정부 시기의 국정교과서 서술과 비슷하다”고 말했는데요. 한 번 비교해보실까요.


▶4차 고등학교 국정교과서(전두환 정권)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을 사주하여 제주도 폭동 사건과 여수·순천 반란 사건을 일으켰다. 제주도 폭동 사건은, 북한 공산당의 사주 아래 제주도에서 공산 무장 폭도가 봉기하여, 국정을 위협하고 질서를 무너뜨렸던 남한 교란 작전 중의 하나였다. 공산당들은 도민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한라산을 근거로 관공서 습격, 살인, 방화, 약탈 등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 후, 우리 나라는 군경의 활약과 주민들의 협조로 평온과 질서를 되찾았다. 여수·순천 반란 사건은 제주도 폭동과 마찬가지로 대한 민국을 혼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5차 고등학교 국정교과서(노태우 정권)

“공산주의자들은 남한 내의 정치적 불안정, 경제적 취약점을 이용하여 교란 작전을 폈다. 대한 민국 정부 수립을 전후하여 그들은 제주도 4·3 사건, 여수·순천 반란 사건 등을 일으켰다. 제주도 4·3 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의 5?10 총선거를 교란시키기 위해 일으킨 무장 폭동이었다. 그들은 한라산을 근거로 관공서 습격, 살인, 방화, 약탈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군경의 진압 작전과 주민들의 협조로 평온과 질서를 되찾았다. 여수·순천 반란 사건은 새로이 수립된 대한 민국을 혼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탄약고, 병기고를 파괴하는 한편, 관공서, 경찰서를 습격하여 경찰과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그러나 국군의 활동으로 곧 진압되었다. 이러한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교란 작전은 그 후에도 여러 가지의 형태로 나타났다.”


4차 교과서는 ‘제주도 폭동 사건’이라고 지칭하죠. 왜 만화 내용이 4-5차 시기의 국정 교과서 내용이 겹쳐 보일까요. 이만큼 역사 서술은 후퇴한 걸까요.


■미군정 상황에 태극기까지…대한민국 (정부) 수립?

사실 오류도 여럿 발견됐습니다. 1947년 상황을 그린 20쪽에서는 그해 3·1절 기념식 때 경찰 발포로 6명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한데 대해 제주도민이 분노한 상황에 대한 언급 없이 남로당원들이 “정부에 반대하면서 선동하겠어”, “분탕질을 하자”고 말하는 것으로 그려 모든 것을 남로당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때는 미군정 상황인데도 태극기까지 그려져 있습니다.

19쪽에서는 ‘건국 직후의 반정부 태풍’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는데 이 시기는 1948년 2월 남한만의 단독 선거 결정 이후의 상황이죠. 정부 수립 전후의 상황으로 ‘건국’이라는 용어가 부적절합니다. 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임시정부는 민족운동단체이지, 정부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는데요. 1월 임명된 김 관장은 지난해 10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성명에 이름을 올렸고 2008년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 만든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진이기도 합니다. 이 만화는 지난해 제작된 것이라지만 왜 따로 떼어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까요?

만화책 중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4장 제목은 ‘대한민국 수립’으로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습니다”라고 서술돼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 수립 이후’, ‘대한민국 수립은 국제사회가 부여한 정통성을 확보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서술이 반복되는데요. 올해 발행된 초등학교 사회과 국정 교과서에도 ‘정부’가 빠지고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나와서 논란이 됐죠.

2016년 발행된 초등학교 사회과 국정교과서.

뉴라이트 쪽에서는 계속 1948년이 건국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이 주장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1945년 독립 이후 정부 수립 과정에 주도 세력으로 참여한 친일파를 미화할 우려가 있어 계속 논쟁이 되어 왔죠. 임시정부는 정부가 아니라는 박물관장, 그리고 그 박물관에서 만든 편파적인 이 만화, 어떻게 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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